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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Books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읽고

[ 별 영양가 없는 서문 ]

공부로 바빠도 독서는 꾸준히 하고 있다. 2020년 동안 잘 들여놓은 버릇이다. 사실 2021년의 첫 책이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한 권 읽었고 지금은 캐네스 밀러의 「인간의 본능」을 한참 읽고 있는 중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밀리의서재가 2020년 가장 핫했던 도서로 선정하여 호기심에 읽어봤다.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 있어하는 주제와 설정은 아니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다 방심한 틈에 죽은 가족들이 남기는 꿈을 다루는 장에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직도 나에겐 가까운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화제가 감정적으로 취약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캐네스 밀러의 「인간의 본능」은 진화론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 읽고 있다. 진화론에 대한 역사와 사회 인식, 생물학적인 지식까지, 책에서 다루는 범위와 깊이에 전혀 아쉬울 점이 없을 만큼 좋은 책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쉽게 소화가 되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특히나 밀러는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애용했던 진화심리학에 대해 점잖지만 신랄하게 비판한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을 깨부수고 시각을 넓히는 것이 독서의 참의미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적당한 강도로 나의 진화심리학에 대한 지지를 부셔주었으면 좋았으려 만 밀러는 아주 매콤하게 박살을 내주셨다. 비판을 읽다 너무 놀라서 읽고 있던 책을 놓쳐버릴 뻔할 정도였다.

그렇게 1월 독서를 근성있게 이어 가던 중, 자취방 책장에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에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라는 종이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다시금 발견한 시점에서 이틀 전, 폭풍 성장하고 있는 AI 업체에서 마케터 면접 제안이 들어왔다. 마케터라는 직종 자체에는 회의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면접을 제안받은 회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AI 분야,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에 대한 솔루션 제품을 다루게 되다니. 내가 그렇게도 몸담고 싶었던 영역이 아닌가! 이미 마음만은 강남을 가는 2호선 기차에 타있었다.면접 때 똘똘한 말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었고,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종이책을 읽고 싶기도 했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pg035. 우리는 경험의 일관성을 이야기할 때 '브랜딩'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pg079. 마케팅이 소통이라면 브랜딩은 관계입니다.

pg093."마케팅은 서비스/제품을 아직 사용해보지 않은 잠재 고객을 사로잡는 일입니다. 에어비앤비를 사용하지 않고 입사한 사람은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알 수있습니다. 그리고 마케터는 경험하지 않은 것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사하면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갈 예정입니다. 다녀와서 잠재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에어비앤비와 실제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경험을 비교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pg135. 물질로 구체화하기 어려운 서비스를 브랜딩하는 데 배짱이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이들에게 가장 먼저 서비스나 배민문방구 제품 등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배민의 DNA를 전파하는 역할을 부여합니다.

pg198. 외국계 브랜드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는 한국 브랜드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이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문화를 잘 알면 흐뭇하지 않나요?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된장찌개를 잘 먹고, 한국어로 농담도 척척 잘하면 호감이 가지요. 반대로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 나라 스타일로만 커뮤니케이션하면 건방진 브랜드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 문화도 잘 이해하는 쿨한 브랜드'란 인식을 쌓아가야 했습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입니다. 미국에서 온 에어비앤비 용어를 한국인도 잘 이해할 수 있고, 입에 착착 달라붙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pg201. 초기 2년간은 에어비앤비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에어비앤비와 가장 잘 맞는 특정 커뮤니티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커뮤니티와 먼저 소통하고, 그들이 에어비앤비의 팬이 되도록 만드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pg224. 스타트업의 브랜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우리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과연 실제로 일관성을 갖고 진행하는 지 점검하지 않으면 열심히 시간을 들이고 돈을 쓰고 있음에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겉돌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로 그곳을 함께 보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pg243. 배민의 이벤트는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게 꾸미는 것이 원칙입니다. 구체적으로 주제를 알려주거나, 글자 수를 정하거나, 작품의 예시를 보여줄 때 사람들의 참여도는 더 높아집니다.

pg282. 광고를 통해 에어비앤비가 말하는, 살아보는 여행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에어비앤비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짧은 광고 영상 속에 많은 걸 담기보다 전달하려는 하나의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다수의 감정을 움직여야 합니다. 살아보는 여행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에어비앤비로 예약하는 방법이나 로고 노출, 브랜드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모두 생략했습니다.

pg300. 첫 기획 문서에는 아이디어의 배경 설명(문화적, 상황적 상황 설명도 포함), 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기대되는 결과를 서술합니다. 또한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과 예산도 포함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브랜드 가치와 부딪히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브랜드 가치에 적합한지 확인합니다. 스토리북뿐 아니라 모든 아이디어를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개진할 때, 워드 문서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의 흐름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아이데이션부터 이미지나 비주얼에 신경 쓰면 맥락을 놓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에 구멍이 생겨 알맹이는 없지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기 쉽습니다.

 

책은 배달의민족, 스페이스오디티, 에어비앤비, 트레바리와 같은 스타트업에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들을 엮어 두었다(이제는 스타트업이라 보기 어려운 기업도 있지만). 그들이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한 계기부터 현장에서 느낀 브랜딩의 의미, 고난, 성과 등의 흥미로운 내용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나에게는 브랜드팀 오프라인 매니저로 일했던 전 직장이 많이 생각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나의 과거를 들춰볼수록 이들에 대한 존경과 나에 대한 아쉬움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던 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브랜딩 마케팅에 대한 나의 입장은 변하지는 않았다. 책에서 언급되었듯이, 좋은 브랜드 마케터는 자신이 일하는 곳의 가치관, 신념 등의 회사의 페르소나를 열렬하게 사랑해야한다. 즉, 나에게 브랜드 마케터는 직업보다는 직장이라는 개념에 가까웠고 이것은 내가 갖고 있는 직업관과 맞지 않는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브랜드에 매료되어 팬이 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 이러한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뚜렷하게 원하는 것은 전문적인 직업능력의 성장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길 계기가 되었다.